영화 '라쇼몽' 리뷰
2022.01.09 - [질적연구이해하기] - 사실과 진실

영화 「라쇼몽」.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질적연구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며 접하게 되었다. 단지, 영화를 감상하고 리액션 페이퍼를 작성하기 위한 관람자의 시선으로 「라쇼몽」 관람은 시작되었다. 오래 전 개봉한 일본영화, 흑백영화라는 것 이외에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던 영화의 첫 관람은 배우들의 특별한 연기, 생소한 연출이 새로웠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과거형으로 풀어갈 때 모두가 소설을 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를 하며 영화를 보았는데 전개가 계속 되면서 사무라이의 죽음에 대한 증언자들의 이야기가 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무엇을 말하고자하는가?’, ‘누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었다. 점점 혼란 속에 빠져들 때 사무라이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자의 증언을 들으며 사건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 되었지만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는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로 첫 관람은 끝이 났다.
자연스럽게 사건추리를 하며 영화를 보려했던 내 의도와 다르게 ‘누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의심을 가지며 보게 되는 영화가 되었다. 또 이 영화를 ‘한번 본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에서 일어난 사실은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도적은 여자를 겁탈한다.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아내는 결국 사무라이를 풀어주었고, 도적은 사무라이와 싸우려다가 사무라이가 아내를 버리자 아내가 이 둘을 이간질 한다. 이간질은 결국 사무라이와 도적의 싸움으로 이어졌고 도적이 승리하여 사무라이를 죽인다. 아내는 도망가고 도적도 어디론가 달아난다. 그리고 증언자들의 증언이다. 라쇼몽 관청에서 나무꾼과 승려는 한 남자에게 어떤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무꾼, 도적을 잡은 사람, 도적, 부인, 사무라이의 증언이 모두 다르다. 각자가 가진 욕망 때문에 사실이 조작 되어 자신만의 이야기로 증언한다.
표리부동(表裏不同) -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름.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 생각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KBS 범죄사건 재해석 프로그램 ‘표리부동’ 「제 1화. 캘린더연쇄살인마」 편에서 2009년 겨울, 6명의 여성을 연쇄 살인을 저지른 강호순의 범죄가 방영되었습니다. 강호순은 늘 인사성이 바르고 동네주민들에게 호평을 받는 미남형 외모를 가진 따뜻한 동네아저씨로 생활하며 겨울마다 연쇄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오랜 수사 끝에 어렵게 검거가 되었는데 그 당시 연쇄 살인마가 아닌 하나의 살인사건 용의자로 검거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검거일이 명절연휴 전날이었고 자신의 범죄를 진술하던 강호순은 형사에게 명절연휴가 지나고 언론에 보도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강호순 말에 의하면 강호순의 아들이 명절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뉴스를 보고 속이 상할 것을 염려하여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아빠 코스프레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진술에서 보인 하나의 해프닝으로 프로파일러들의 의심을 자극했고 이어진 조사 끝에 그동안의 미재로 남았던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강호순이라는 것을 밝히게 됩니다. 이 판단을 하게 된 프로파일러의 해석의 근거를 살펴보면 심리학교수 이수정 프로파일러와 형사출신 경찰대학교수 표창원의 해석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심리학교수 이수정은 범죄자의 폭행하는 부모님과 자라온 환경, 중고등학교 시절 선배에게 학교폭력을 당하며 살아온 배경으로부터 폭력의 노출을 비추어 보고 강자와 약자의 폭력이 성립되는 것에 정당함을 배웠기 때문에 살인자가 되었고 사이코패스로 진화한다고 주장합니다. 경찰대학교수 표창원은 사이코패스가 정상인보다 전두엽의 크기가 15% 작기 때문에 전두엽의 역할(공감능력,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 적어서 사이코패스 행동으로 살인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는 모두가 다릅니다. 다름의 중심에는 보이는 면이 아닌 이면의 내용에서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유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라쇼몽을 보며 사실을 모른 채 증언들로 혼란을 겪으면서 범인을 추리해보기도하고 되감아 보며 증언들을 분석해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이 행동이 저만의 행동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카톨릭인 저는 잘못을 했다고 생각했을 때 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봅니다. 어릴 때에는 성당을 갈 때마다 꼭 해야 하는 줄 알고 잘못(시기나 질투의 마음을 가진 것, 부모님과의 약속을 어긴 것,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 등등)을 종이에 모두 적어 두었다가 줄줄 읽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고해성사를 보는 죄를 제 자신이 판단하고 고해합니다. 신부님께 내 죄를 고해할 때에는 지극히 주관적인 내 시선에서 사실을 말하며 용서를 구하고 죄를 뉘우칠만한 기도문(보석)을 받습니다. 신부님은 신자의 주관적인 사실을 듣고 죄를 판단하고 죄를 사하여주시는 것입니다. 신도 아니고 판사도 아닌 내가 내 죄를 내가 판단하여 용서를 구하고, 신부님도 신자의 주관적인 사실(죄)을 용서해주십니다. 우리 모두 내 자신을 중심으로 각자의 가치관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삶 속에서 나의 중심으로 내가 만들어가는 나와 내 플랫폼에 이기심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이 되지 않는 선에서 사실과 진실, 거짓 그리고 진심, 증언... 변명, 핑계 여러 가지 단어와 표현들이 난무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화 라쇼몽을 보며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 이기심이 없을 수 있을까? 나에게 질문하며 내 삶을 대하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